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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크리스마스는 생일 다음으로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모두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척 방에 누워 누군가 내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가길 기다렸다. 부산에서는 눈 구경하기 힘들었지만 매번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지도 모른다며 야구 우승을 기다리듯 괜히 마음을 졸였다.
나이가 들어 외국에서 요리를 할 때 크리스마스는 매상이 가장 좋은 바쁜 날이었다. 얼굴에 소금기가 낄 때까지 일을 했다. 자정이 넘으면 오븐에 불을 끄고 선반에 걸터앉아 동료들과 캐럴을 부르고 맥주를 마시다가 새벽에 주방을 나섰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크리스마스가 지 부동산계산기 난 다음 날 새벽 텅 빈 거리를 혼자 걷는 것과 비슷하다. 누군가는 여흥을 즐길 테지만 또 누군가는 뒷정리를 해야 한다. 반드시 반복될 일상의 무게는 크리스마스의 흥분을 쉽게 무너뜨린다. 이제 나는 커다랗고 화려한 케이크보다 작은 과자 하나를 두고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중년이 되었다.



적금 이자 계산법 서울 종로구 '스코니'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 빵집에 간 것은 우연이었다. 서대문에서 일정을 마쳤을 때 다음 약속까지는 시간이 꽤 남게 됐다. 독립문으로 향하는 길 오른편으로 아파트 단지가 벽처럼 들어차 있었다. 커피 한잔 할 곳을 찾아 상가로 갔을 때 ‘스코니’라는 간판이 보였 롯데캐슬레전드 다. 새로 생긴 집 같지는 않았다. 아파트 상가에서 오래 버틴 집이라면 꽤 믿을 만하다. 단골 장사는 말처럼 쉽지도 않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게는 몸을 제자리에서 빙글 돌리면 한눈에 모든 게 들어올 만큼 작았다. 빵들은 선반과 바구니에 알뜰하게 담겨 있었다. 빵의 짙은 빛깔과 각 잡힌 모양을 보니 믿음이 갔다.
빵을 한가득 증권사 담고 문 밖에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고 대신 버터와 달걀로 반죽을 한 브리오슈 식빵은 작은 크기에도 무게가 묵직했다. 하얀 식빵의 가벼운 맛 대신 고소하고 묵직한 지방의 맛이 촘촘하게 배어 있었다. 부드럽게 갈라지는 노란 속살은 버터를 닮았는데 나른하게 퍼지는 향은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봄날의 오후 같았다. 웅크리고 앉은 토 취업후학자금대출생활비 끼처럼 몽글몽글하게 부풀어 오른 소금빵은 통째로 뜯어먹었다. 결마다 뜯어지는 빵은 브리오슈와 달리 조직이 탄탄했다. 입안에 바닷바람처럼 퍼지는 짠맛은 버터의 기름기와 섞여 몸을 덥히고 피를 빨리 돌게 했다. 여기에 따로 청한 커피와 곁들이니 고원의 유목민이 짜고 기름진 차를 즐겨 마신다는 이야기가 거짓 같지 않았다.
프랑스식 사과파이 ‘쇼송오뽐므’는 나뭇잎 모양으로 재단한 파이 속에 건포도, 사과를 버터와 함께 볶아 속을 꽉 채웠다. 나눠 먹을 수 없는 빵이었다. 욕심 많은 만화 주인공처럼 홀로 베어 먹는 사과파이는 가을의 들판과 산을 모두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밀가루와 버터, 달걀, 사과의 풍미가 대륙의 지평선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스코니'의 까눌레와 쇼송오뽐므(애플파이).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 집에 들르는 사람들이 빠짐없이 담고 있는 것은 ‘까눌레’였다. 프랑스 서남부 와인 산지인 보르도의 수도원에서 만들어졌다는 까눌레는 사탕수수를 증류하여 만든 럼(Rum)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밀랍으로 코팅한 전용 동판에 구워야 특유의 바삭하고 쫄깃한 겉과 부드럽고 밀도감 있는 속이 만들어진다. 생각보다 만들기는 쉽지만 다시 찾을 만한 까눌레 찾기는 쉽지 않다. 이유는 그 공정의 노하우와 동판이다. 밀랍을 발라 굽는 것은 기본이고 꼭 구리로 만든 틀을 써야 특유의 질감과 맛이 생긴다. 열전도가 빨라 속이 고르게 익고 겉이 바삭해지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까눌레 칭찬을 하니 주인장이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매년 동판을 새것으로 다 바꿔요. 돈은 들지만 그러지 않으면 그 맛이 안 나서요.” 나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속으로 생각했다. 알든 모르든 사람들은 이 집 까눌레를 찾고 점심이 지나기도 전에 다 팔리기도 한다고 했다. 묵은 술처럼 은은하고 길게 뻗는 향을 지닌 까눌레는 그 하나만으로도 오후를 가득 채울 만했다. 나는 그중 하나를 따로 챙겼다. 늦은 밤 까눌레 하나를 접시에 올리고 홀로 앉았다. 오래전 이 빵을 굽던 수도사들처럼 와인도 조금 따랐다. 안식과 평온을 기도하며 빵 한 조각을 먹었다. 무거운 밤이, 묵은 날이 천천히 흘렀다.
#스코니: 사과파이(쇼송오뽐므) 5500원, 브리오슈식빵 4500원, 까눌레 3500원